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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75

지역감정의 시초?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초기에는 전라도 지역에서도 지지율이 어느정도 되었다고 한다. 즉 박정희 초기당시만 하더라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은 거의 없었다고 볼수있다. 하지만 현제의 박정희와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상징으로 비춰지곤 한다. 지역감정의 시작을 논하자면 6.25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6.25당시 남한은 전화에 휩싸여 경남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황패하게 된다. 전후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와 미국으로 수출하려는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고 그로인해 경상도 지역의 발전은 더욱 편중된다. 그러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균형발전론이 호남에서 서서히 여론을 몰아가고 박정희 정권은 전라도 지역 출신들을 요직에서 소외시키게 된다. 사건이 커지게 된 이유는 박정희는 군인출신이였고 김대중은 정치인이였기.. 2009. 8. 20.
노무현에 대한 생각 풍운아이자 승부사의 삶을 살아온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재임기간에 대한 생각을 써볼까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을 자신의 차기 후보로 내새운 것은 정치적 경륜과 기반이 약한 후보를 내새워 차후 수렴청정하여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고 본다. 당시 IMF 사태를 급격하게 진정시키고 월드컵을 성공적 으로 개최한 김대중 정권의 지지도는 높았지만 그런 후보를 내새운다고 할지라도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격적인 이미지가 필요했고 지역감정을 타파한다는 슬로건을 내새워 노무현을 차기후보로 내새우게 된다. 힘겹게 민주당의 차기 대표가 된 노무현에게 초반부터 민주당 원로들의 길들이기가 시작 되었고 노무현은 그것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확실히 노무현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시민운동.. 2009. 6. 13.
일본의 시각에서 생각해본 일제강점기 일본의 극우들은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일본이 분연히 일어선 것이라고 한다. 과연 정말 일본이 순수하게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일까? 일본의 시각에서 일본의 식민지역사를 되짚어 보자. 일본은 아시아에서 어느나라 보다 빨리 세계의 흐름에 눈을뜨고 외국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세계열강들에 비하여 식민지가 하나도 없던 일본은 조바심을 느끼게 되고 때마침 남하 하려던 러시아와 전쟁 승리 후 식민지 전장에 일본도 참여한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 된다. (일본은 예전부터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였고 힘있는 자가 섭정을 펼치던 곳이라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쉬웠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강한자가 권력을 잡고 나머지를 굴복시키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한 구조적 잇점이 일본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 2008. 12. 5.
주한미군기지이전 동북공정 그리고 통미봉남 언뜻 보기에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단어지만 어거지로 저 단어들에 대한 연관점을 찾아보려 한다. 남한은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굥격거점으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쟁터로 냉전의 터널을 지나왔지만 냉전이 끝난 후에도 남한과 북한은 통일하지 못한채 평행선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동안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닌 하나의 종교단체화 되어버린 주체사상으로 국가를 지탱해 가고 있었기에 개방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냉전이 끝난 후 자국경제가 어려워진 러시아에서의 원조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이어오던 중국의 원조도 시들해 진다. 그러면서 북한은 김정일의 측근과 친중파로 나뉘게 되고 김대중 정권이후의 원조는 김정일 측근쪽에 지원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어려워진 경제상황 속에서 남한과 북한의 군사력차는 점점더.. 2008. 12. 4.
내가 보는 근대사 요즘 근대사에 대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나름대로 내가 보는 시각의 근대사를 정리해 볼까 한다. 일본에 합방되어 세계2차대전에 참가한 한국은 패전국으로서 2차대전의 종결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연합군의 시각에서 한국은 일본과 한나라였고 딱히 한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진격한것이 아니다. 이는 해방 후 분단의 빌미를 재공하게 된다. 당시 2차대전 종전을 전후하여 소련에서는 조선의 공산주의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된다. 소련의 곡뚜각시 공산주의 정부를 조선에 새우려 했지만 저항이 의외로 드샜는지 서열이 까마득히 낮은 어린 김일성이 조선공산당의 총수가 된다. 일본의 본토로 상륙하려던 미국은 육탄돌격을 마다않는 일본의 저항에 놀라게된다.(실제 참전용사들의 기록을 보자면 일본과는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 2008. 12. 3.
민자영에 대한 불편한 진실 뮤직비디오, 드라마 등으로 명성황후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명성황후가 정확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줄타기 외교를 한것은 단지 자신의 집안이 권력을 잡기위한 방편이엿을 뿐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마치 격정의 시대에 국가를 위해 줄타기 외교를 한것이라 말하는 것을 보면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해준다. ----------------------------------------------------------------------------------------------------- 1.대원군을 몰아낸후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약) 일본과 맺고 대원군 세력 파면, 유폐 2. 1882년 임오군란 / 원인: 민씨정권의 부정부패 하급 .. 2008. 12. 3.
FTA에 대한 넋두리 FTA 체결을 한다, 만다 이러쿵 저러쿵 하더니 결국 안할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하다. 이쯤해서 한미FTA에 대한 추측을 읊조려보려 한다. FTA를 추진하던 노무현 정권은 현제의 금융위기 상황을 어느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의 미국경기 침체에 대한 견해 중 최장기인 10년과 FTA기간이 일치하는 걸로 봐서는 당시 이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계승한 현정권에서의 FTA전략은 경제침채기에 경쟁국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환율까지 떨어뜨려 싼가격으로 승부하여 난국을 타계하려 했던것 같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전략은 실패하고 만다. 실패이유를 나름대로 나열해 보자면..... 첫째, 우리가 미국에 수출하려던 물품들은 미국에서도 중요한 산업들이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함으로.. 2008. 12. 3.
내가 바라보는 박정희 - 3 선과 악 개념을 떠나서 바라보는 박정희는 정말 재미있고 대단한 인물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잣대로 선과 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역시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일이지만. 아직은 과거사의 여파가 현제까지 미치기에 박정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부분만 부각 및 은폐하려는 것 같다. 역사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과거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단점은 거울로 삼아야 하지만 아직 한국은 그런면이 많이 부족한 듯 하다. 2008.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