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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찾아서/창문저편의 무지개

에반게리온은 왜 명작인가

by 윙혼 2020. 1. 30.

90년대 제페니메이션을 즐기던 사람들은 에반게리온이 명작인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애증 어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 명작인 것을 인정하면서 이중적인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보는 이유는 에반게리온의 영향으로 제페니메이션이 청소년들의 전유물처럼 변해버렸기 때문이지. 물론 에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비교적 낮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제작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맞아

에반게리온 이전에도 아동용, 청소년용 위주로 제페니메이션이 제작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카우보이 비밥과 같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누아르 장르나 공각기동대처럼 철학적인 이야기를 깊게 다루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었어. 에반게리온 이후 그런 작품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제페니메이션은 청소년을 위한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생기게 되었어

90년대만 해도 만화는 유치한 거라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잘 모르니까 그러는 거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 그렇다고 에반게리온은 유치한 작품이냐고 물어본다면 절대 아니라고 답할 거야. 에반게리온은 분명히 심오한 작품이야. 에니메이션을 넘어서 인류 문학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라 주저 없이 말하고 싶어. 도대체 왜 이런 위대한 작품이 제페니메이션의 질적 하락을 야기했을까?

 

 

 


영화, 에니메이션을 포함한 모든 문학 작품들을 만드는 사람들의 연령은 청소년보다 높을 수밖에 없어. 성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를 돌이켜보자면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야. 그래서 문학 작품들은 청소년기를 매우 아름답고 아련하게 표현하는 성향이 있어. 그런데 이것은 성인의 뇌 속에서 상당히 미화된 기억들이야. 한번 우리의 청소년 시절 기억들을 돌이켜 보자고

어린 시절 실수를 해도 사람들은 웃으며 격려해주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엄격하게 자신을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이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무언가 잘못해서 그런 것인지 곤혹스럽고 갑자기 세상이 뒤틀렸다는 느낌이 들지. 에반게리온에서는 이것을 3년 만에 갑자기 만난 아버지가 조종 법도 가르쳐주지 않고 로봇에 탑승시켜 사도와 싸우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표현했어

청소년기는 육체적으로 성숙하면서 성적인 호기심이 발동하는 나이이기도 해. 동년배보다 성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연상의 이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나이지. 이것을 카츠라기 미사토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표현했어. 친구가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경쟁을 넘어 피 튀기게 싸울 수도 있다는 것을 사도에 잠식된 3호기와의 전투를 통해 표현했다 생각해

어릴 적 동화책으로 배우던 세상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증오를 품고 반사회적 성향을 띠기 쉬운 시기가 청소년기잖아.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는 힘들고 도덕적인 말만 하던 어른들이 세상의 잔혹함을 서서히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청소년들은 내적으로 억눌리고 있는 상황인 거야. 이것은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 규정하고 싹 엎어버리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인류보완계획이지

 

 

 


나도 어른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어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는 정말 짧은 기간이잖아. 급변하는 주변 상황도 적응하면 무덤덤해지는 거니까 혼란해하는 청소년들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 이상으로 조언을 해줄 자신이 없어. 이건 대부분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왜 이런 혼란을 겪는 것인지 몰라서 혼란에 빠져있는 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내며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현실이야

에반게리온에서 '낯선 천장'의 의미는 이런 청소년들의 혼란을 대변하는 말이야. 문학 작품들을 통틀어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미화된 청소년기의 기억들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이 느끼고 있는 심리적 충격은 천지개벽 수준인 거지. 그런 청소년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작품이 에반게리온이야. 에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청소년 층에서 접근이 쉬운 편이고 자신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최초의 작품을 접했으니 열광할 수밖에

 

나도 청소년기에 에반게리온을 접했고 당시에는 상당히 재미있게 봤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뭔가 이상한 거야. 내가 이런 유치한 작품에 열광을 했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낄 정도였어.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작품에 끌렸던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내가 변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청소년기의 시각으로 다시 에반게리온을 봤더니 왜 그때의 내가 에반게리온에 끌렸는지 알게 되었어

 

정리하자면 에반게리온이 명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미숙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하지 못하고 있던 말들을 에니메이션으로 표현해주는 것을 보고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야. 다른 어른들은 시간이 약이다, 너희들은 어려서 모른다는 식으로 미숙아 취급할 뿐인데 대변해주는 무언가를 만났으니 희열을 느낄 만하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잡한 청소년기의 심리를 분석해서 그것을 에니에 녹여냈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는 거야. 물론 어른이 되어서 어른의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낼 수도 있었겠지. 청소년은 결국 성장해서 어른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면 에반게리온에 대한 평가는 낮아졌을 거야. 청소년기를 어른의 시각이 아닌 청소년의 시각으로 풀었다는 것이 에반게리온이 명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니까

 

 

 


주제를 잠시 돌리자면 90년대 제페니메이션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에반게리온이 애증의 대상인 이유는 에반게리온 이후 제페니메이션이 청소년층의 전유물처럼 변해갔기 때문이야. 에반게리온은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에반게리온을 보며 느낀 카타르시스를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을 거야. 그로 인해서 '천원돌파 그렌라간'이라는 희대의 명작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청소년층 만을 타깃으로 하면서 전체적인 제페니메이션의 질은 낮아졌다 생각해

물론 일본의 에니메이션 사업이 수익을 쫓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어. 캐릭터 파생 상품을 고려해 필요 이상의 캐릭터를 출연시키고 인기를 끌면 무리하게 분량을 늘려서 용두사미로 결말이 나는 것은 일본 에니메이션 사업 구조의 문제지. 청소년층이 가장 돈이 되는 고객이라 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맞아. 하지만 에반게리온이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이 엄청난 만큼 일본 에니메이션 타깃의 저연령화를 가속시킨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생각해

희대의 명작이 일본 에니메이션이 퇴보하는 결과를 초례했다 생각하는 것은 에반게리온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그런 것이려나? 어쨌든 에반게리온에 대해서 애증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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