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기 전 건담 시리즈를 좋아했었어. 건담 특유의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어린 나에게 깊은 여운을 줬었거든.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온 후로 조금 유치하다 생각하게 됐었어. 일본인들이 군 경험이 없다 보니 지휘체계나 군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들이 많았거든.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치한 군부심도 한몫했고 새로 나오는 건담 시리즈들이 상업성을 쫓으며 슈퍼로봇화 되어간 것도 있었던 것 같아
물론 나도 슈퍼로봇물 좋아해. 그런데 슈퍼로봇은 열혈물이고 건담 시리즈는 반전물이잖아. 이 두 개가 섞이면 엇박자가 나지. 그래서 건담 시리즈는 점점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었어.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결말이 가장 인상 깊었던 MS08소대를 다시 보게 되었지. 갓 부임한 소대장이 게릴라들과 전리품 분배에 대한 협상을 하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항명하는 것을 보면서 단순한 군부심 때문에 거부감을 느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하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 보니까 어렸을 때 느꼈던 건담 시리즈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어.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전쟁의 광기와 잔혹함을 목격하고 냉전이라는 긴장상태에 돌입했던 일본인들의 감성은 건담 시리즈에 강하게 녹아들었어. 그래서 전쟁의 잔혹함과 그것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비통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요즘 나오는 에니보다 한수 위야
당시 에니는 전하려는 확실한 메시지가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에니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요즘은 상업성에 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 이건 단순한 꼰대 마인드가 아니야. 전하려는 메시지를 정하고 필요한 수의 등장인물로 기승전결 구도를 갖춰서 이야기를 전개. 그 외에 쓸데없는 요소들은 배제하는 미덕이 있던 시기였지. 요즘 에니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다 보니 메시지는 산으로 가고 덕후들의 주머니만 노리고 있는 것 같아
나이가 들어서 진지한 작품들 보다 가벼운 작품들이 끌리긴 하지만 예전 일본 에니에서 느껴지던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결말만큼은 최고인 것 같아. 물론 라스트 리조트 기준으로 말이야. 남자의 로망은 탈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엔딩이지. 오프닝 곡도 상당히 좋아. '폭풍 속에서 빛나 줘'라는 곡인데 세계관과 잘 어울려
오랜만에 보니까 옛날 생각나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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