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낙원을 찾아서/이름없는 별 하나

5.18을 사태라 부르면 안되는 건가?

by 윙혼 2020. 2. 10.

황교안 대표가 5.18을 사태라고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어. 5.18은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다른 호칭은 금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폭동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폭동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되지 않은 인간 집단이 자연발생적으로 폭력에 의해 소동을 일으키는 일"이야.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폭동으로 시작되었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프랑스 대혁명도 바스티유 폭동으로 시작되었어

잠시 5.16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5.16은 쿠데타로 일어났잖아. 그런데 혁명의 사전적 의미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가의 기초, 사회의 제도, 경제의 조직을 급격하게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고 5.16으로 무정부상태의 혼란이 가라앉고 새롭게 국가의 체제가 정립되었으니 혁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5.16은 쿠데타로 규정해야만 하는데 5.18은 폭동으로 부르면 안 되는 거야?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생각하던 생각하지 않던 5.18은 사전적 의미의 폭동으로 시작된 사건이었어. 5.18이라는 폭동에 어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지 논의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금기할 사안이 아니야.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어났던 사건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은 모순 아닌가? 5.18이 독재에 저항했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싸운 대상은 독재자의 개가 아닌 질서를 유지하던 군인과 경찰이었어

아니라고? 독재자의 개들이 평화롭게 시위하던 시민들을 항해 폭력을 행사하자 그것에 분개하여 일어난 것이 5.18이라고? 그렇다면 5.18 과잉진압으로 처벌받은 사람이 있어야지. 발포 명령자를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현장의 군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정당방위로 발포했을 뿐이었어. 정 믿지 못하겠다면 5.18 당시 광주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차분하게 되짚어 보자고

 


5.18 당시 광주로 내려갔던 군인들은 쉬다 온다는 생각으로 공, 바둑판 등을 챙겨서 광주로 내려갔다고 해. 그 사람들은 특정 인물의 친위대가 아니었고 지금처럼 그냥 나라 지키려고 군대를 갔던 순수한 청년들이었어. 그런데 그 시각 광주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어.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온다"라는 유언비어가 광주에 퍼지고 있었던 거야

당시 광주로 향하던 군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었고 전남 출신도 있었어. 당시는 시위에서 돌이나 화염병을 잘 던지지 않아서 별다른 보호장비도 없었던 시절이었어. 가벼운 마음으로 광주에 도착한 군인들이 본 것은 자신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성난 폭도들이었어. 폭도들은 보도블록을 깨서 주먹만 한 돌을 던져댔고 그런 돌로부터 몸을 보호할 장비가 없던 군인들은 살기 위해 백병전으로 폭도들과 맞섰어

그 과정에서 폭도들과 휩쓸린 시민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거야. 그렇게 양측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흥분한 폭도 측에서 버스를 몰아 군인들에게 돌진했고 그것을 본 군인들이 살기 위해 발포를 했어. 이런 과정을 거치며 5.18은 과열된 거야. 그런데 그 후 정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전남 도청에 지휘부를 만들고 신속하게 주변의 무기고를 털어 모은 후 교도소를 습격한 의문의 인물들이 있었고 그 인물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어

군인들이 광주에 도착하기 전 흉흉한 소문을 퍼트린 것이 그들일 가능성이 높고 사전에 무기고 위치를 파악하고 일사불란하게 털어서 집결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 거라 생각해. 그들의 행적을 보면 조직력과 행동력이 급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어. 이 혁명 영웅들은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정말 궁금해

 


어쨌든 5.18을 사태라 불러왔던 것은 당시 시민들의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군인들의 폭력을 동반한 진압을 야기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당시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군인들은 범죄자라 규정하고 유언비어에 속아 군인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폭도들은 절대선으로 둔갑시켜버렸어. 객관적으로 보면 잘해봐야 쌍방 과실이고 군인들을 피해자로 볼 수도 있는 사건이었어

5.18 유공자들은 특혜를 받더니 눈이 돌아가서 당시 군인들을 범죄자로 몰고 자신들은 선량한 피해자인 척하는데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당시 군인들은 성난 폭도들이 죽이려 달려들었을 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죽었어야 했다는 건가? 우스운 건 역사학자들도 여론에 편승하여 5.18을 순백의 민주화 운동으로 미화하는데 급급하고 사법기관도 그에 편승하면서 5.18은 순백의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하는데 성공했지

지금 한국에서 5.18은 하나의 종교야. 순백의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은 은폐되어야만 하지. 적어도 5.18 당시 일순간에 무기고를 털고 교도소 습격을 지휘했던 사람들의 정체와 그들의 목적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사태라 부르는 것이 맞는 사안이야. 훗날 역사에서 그날의 진실이 밝혀질지 밝혀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5.18 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볼지 사태로 볼지 내전으로 볼지는 자신의 역사적 견해에 따라 다른 거야

5.18을 사태라 부르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폭동이라는 표현을 피한 가장 중립적인 표현에 가까운 거야. 이것이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어.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김일성 만세도 허용해야 된다는 말이 나오는 세상에서 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불러야만 한다니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댓글